조 권은 2017년 7월부터 CBS 2/KCAL 9의 리포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저널리즘 경력은 인쇄, 라디오, 방송 매체에서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2년 샌루이스 오비스포에 있는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에서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동안 캠브리안과 여러 지역 TV 뉴스 방송국에서 뉴스룸 인턴십을 시작했습니다. 권 기자는 신문사에서 글을 쓰면서 인쇄용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글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디테일 때문에 인쇄물이 "훌륭한 스토리텔러/리포터가 되기 위한 최고의 기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이후 권 기자는 벤츄라에 있는 KVTA의 리포터 겸 앵커, CBS 라디오의 '머니 101' 쇼 재디자인, 20세기 폭스 온라인 대중문화 쇼의 비디오 자키 총괄 프로듀서, KABC 라디오 AM, 아이하트미디어 방송국 KFI, 640 AM의 리포터 등 여러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했습니다.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잠시 언론계에서 일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LA 다운타운의 한 건축 회사에서 약 9개월간 근무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5살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합니다.
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TV 출연자만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거나 특정 스토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일반 대중이 다른 시각에서 기자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커리어를 통해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다뤄왔나요?
모든 것이요. 기자는 모든 것을 취재해야 합니다. 전형적인 LA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제가 다뤘던 모든 이야기를 다뤘죠. 하지만 결국 재미있는 특집 기사를 다루게 되었고, 지금은 방송국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과 기분을 좋게 하는 뉴스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저는 이 코너를 많이 진행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들이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트기를 타고 올라가서 중력을 느꼈던 일처럼 뻔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정말 멋졌어요. 캔디토피아 같은 곳은 일반인보다 먼저 가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제 이야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죠. 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항상 '누가 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심어줬니?"라고 물어보지만, 종종 그냥 아이일 때가 많아요. [한 지역 아이는 LA 다운타운에 노숙자가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나는 이 많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데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받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필품이 담긴 배낭을 모으기 시작했고, 작은 목표가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목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모았습니다. 사우스 베이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정말 멋졌어요. 전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한 차선만 따라가느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거나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제 자신에게 의존합니다. 촬영, 편집,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죠. 직접 인맥을 쌓고 비롤 등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야 하죠. 사람들과 소통하고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죠.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위와 같은 일상적인 일이라도 다른 측면을 찾아내면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스토리를 독특하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요. 자신의 어휘를 빌리자면, 부모님이 그런 관심을 심어 주셨나요?
네, 맞아요! 저는 정말 수줍음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 동생 친구들이 제가 말을 안 해서 벙어리라고 놀려댔던 기억이 나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다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뉴스를 보곤 했어요. 코니 정이 나왔어요. 저와 닮은 사람을 본 기억이 나요. 코니는 중국인이었고 저는 한국인이었지만 저와 비슷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 저렇게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아,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저는 정말 기자처럼 모든 독후감을 쓰는 아이였어요. 지금 TV에서 보는 그래픽과 같은 책을 들고 아빠가 VHS 캠코더로 녹화하고 있었죠. 뉴스 리포터가 되는 것이 너무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끄럼을 많이 타는 제가 학급 앞에서 생방송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어요. 다른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항상 리포터가 되고 싶었어요.
소수자인 여성 기자로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비슷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분명히 저는 더 이상 슈퍼 스프링 치킨은 아니지만 여전히 젊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자녀들이 '정말 멋지다'고 말할 때면 항상 어깨 너머로 (훨씬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처럼) 바라보게 되죠. 네, 제가 차세대 저널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사랑해야 해요. 그냥 대충대충 기자가 되어서는 안 되죠. 대표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만약 제가 대표가 된다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How difficult would you say it is to balance the many different jobs required of reporters in today’s media landscape?
For me, I've always said that you want to learn everything anyway. I don't ever want to be afraid of learning. For me, it's just something I enjoy, and I think it's a benefit for me, so I don't find it hard. Of course, it's difficult to learn new skills. Two or three years ago I started doing TV stuff at Time Warner Cable news before it became Spectrum News. It was up in the Antelope Valley (in LA county) and I was a one-man-band. I told the news director I had not edited a video in 10 years and that everything was foreign to me, but they said don't worry and that they would teach me. The hard part is the actual storytelling and enjoying what you do, so all that stuff (the technical side) is just kind of bonus for me. There are still people who don't want to learn, won't learn, and refuse to learn. But for me, because I like learning, it has been challenging in a good way. I like being challenged, mastering something, and finding new ways to do things. That's a long way of saying it's easy for me not to see it as a hard thing. I embrace learning.